히가시노 게이고 '연애의 행방'

밀리의 서재 구독을 다시 시작하고 수십 권을 담아놓았지만, 어찌하다 연애의 행방이 나의 첫 작품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유명한 책이 많은데 하필 '연애의 행방'이라니 웃기다. 심지어 사랑 이야기에는 관심 1도 없는 나였는데 참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군. 앞으로 읽은 책은 여기 나의 공간에 담아 나중에 다시 추억 삼아 꺼내 보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금붕어 기억력이라 이렇게 의식적인 행동이 없으면 금방 까먹기 때문이다. 암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내 연애의 행방은 어디에

겨울 스키장, 낭만적인 설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아니 바람) 이야기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연애의 행방'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은 아니다. 반전의 대가답게 스키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미묘한 심리와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사랑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작품.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관계도가 아주아주 복잡하다. 처음엔 일본 이름이다 보니 이 등장인물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파악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에? 이 사람이 남자였어? 하고 다시 그 챕터를 읽기도 했다지 호호호.

연애의 행방'은 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에피소드는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을 배경으로 한다. 스키장이라는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흥미로웠다. 히가시노가 동계 스포츠를 알리고 싶어 배경을 그렇게 설정했다고 했는데, 나한테 아주 잘 먹혔다. 스키장 가고 싶어졌다. 매우.  겨울에 눈 오는 일본이 가고 싶어졌다. 매우. 같이 갈 사람?

8명 중 가장 마음이 갔던 등장인물은 히다다. 히다는 복을 얻다 차버렸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임자가 있다. 거참 그것도 복인가. 히다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참 투박한 사람이라 그런가 이해해 주고 싶다가도 역시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히다의 천성이 그래서라기보다 그냥 운이 없다. 지지리도 없다. 

히다의 면모는 이 문장에서 끝이 났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오전 중에 히다가 가장 좋아하는 미식축구계의 최대 이벤트, 슈퍼볼 시합이 전 세계에 중계방송되는 것이다."

숙맥에다 내성적인 성향을 가졌지만, 본인의 관심사 관련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반짝거리는 히다다. 미팅 자리에서 무턱대고 미식축구 이야기를 해대는 청년이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이 사찰 여행 다니는 게 취미라 하자, 따라나서겠다고 한 것이다. 그것도 저렇게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게 사랑이지 뭐야.

그래서 히다-모모미의 관계성이 더욱 소중했는데,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문단으로 인해 나의 억장은 와르르 무너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현실적인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모모미가 히다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며, 고글과 페이스 마스크를 벗는 장면이 참 인상 깊게 남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히다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모모미의 모습이 말이다. 그 '안녕'을 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장점을 이끌어내 주는 능력이 있었던 모모미와 단지 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히다는 등장인물 중 그 어느 커플보다 좋은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내연의 관계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럼 달랐으려나. 

하필 고른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랑에 대한 작품이라 당황스러웠지만 가볍게 맛보는 정도로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게이고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충분히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앞으로도 추천작을 몇 개 읽어볼 생각이다. 생각해 보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어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당시엔 희한하게 내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의 나와 현재의 나는 또 이렇게 다르다. 이런 변화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앞으로 책과 더 친하게 지내야겠다. 

마지막으로 히다의 행복을 빌며 안녕!